제가 참석중인 컨퍼런스 둘째날, 콜로라도주 덴버의 플라자호텔에는 280명의 참석자들이 중앙에 서있는 3명의 퍼실리테이터를 중심으로 앉았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세계의 다양한 갈등이슈가 제기됩니다. rich person vs. poor person, big company vs. small company,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환경보호단체 – 에너지회사, 원자력발전 활용 – 원자력의 위험 경고…

세계의 갈등이슈를 도출하는 과정에 느닷없이 제 머리에 독도문제와 정신대문제가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이슈만이라도 부각시켜보자는 생각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Minority voice 도 동일하게 다룬다는 미션이 있어서인지 바로 제게 마이크가 왔습니다. 순간 급당황! story telling을 통해 독도와 정신대 문제, 일본침략이후부터 겪었던 전쟁, 해방후 다시 찾아온 한국전쟁을 통해 세대를 넘어 trauma를 겪고 있는 한국을 소개했습니다. 뜻밖에도 반응이 뜨거웠고 결국 진행측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그룹 프로세스를 통해 시도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10여명의 참석자를 가진 일본을 대상으로 저 혼자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3가지 이슈와 함께 제 이슈가 최종까지 올라갔고, 마지막에 추첨에 들어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제 이슈가 채택되어 28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에서 온 참석자들이 제 앞에 앉고 저는 그들을 마주 보며 혼자 앉았습니다. 퍼실리테이터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지만 한국에서 혼자 참석했기에 망설이다가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를 무대로 불러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무지 힘든 일이었지만… 순간 제 뒤로 소그룹에서 함께 논의하던 12명의 동료들이 저를 감쌌습니다. 정말 제게는 잊을 수 없는 그룹프로세스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룹프로세스를 통해 끌어낼 수 있었던, 적어도 제게 새로운 사실은 일본에서는 정신대문제나 독도문제에 대해 개인이 입밖에 담기 어려운 social system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일본인 참석자가  이슈를 제기해준 데 대해 ”Thank you” 라고 할 수는 있지만 “apology”는 할 수 없다는 말로  두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 짧은 말을 하는 동안 그녀는 눈물 때문에 말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개인이 상대하기 버거운 사회/국가가 가진 시스템의 무게가 제게도 전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의 표현을 억압하는 사회시스템의 역할… 그녀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어 다른 일본인들이 제게 와서 ‘I am so sorry”를 수도 없이 말합니다. 너무나 뜨거운 감정이어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룹프로세스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이어 일본정부의 교과서 문제를 다시 소개했습니다. 이어 일본의 참석자들은 우선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오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그룹프로세스의 경험을 통해 얻은 레슨은 너무나 많습니다. 제 관심의 주대상이었던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넘어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적 목적에 부합되는 소리만 허용되는 체제속에서 자신의 양심과 내면의 소리를 외면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그룹프로세스를 통해 정수된 에센스입니다.  앞으로 이 레슨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가 제게는 숙제입니다. 그래도 외면하지 말아야겠지요